[뽐재] 고집쟁이

🐈‍⬛짧고 클리셰 범벅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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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그때 다시 잡을 줄 알았거든."


영재가 술을 입에 털어넣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재수없게 술도 쓰다.


"솔직히 내가 뭐가 못났냐? 어? 유겸아, 듣고있어?"


어어 그래.. 유겸은 대충 대답해주며 뱀뱀에게 문자로 sos를 쳤다. 야 영재형 또 시작함 제발 살려줘 나 오늘 약속있어서 가야 돼. 내가 담에 술 살게! 제발!

벌써 3일이 지났다. 최영재가 임재범과 헤어진 뒤, 밤마다 포장마차로 저를 불러내서 징징댄지 정확히 3일. 아니 이럴거면 다시 만나달라 하라고.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유겸도 슬슬 한계가 오기시작했다.


"아니 형이 헤어지자 그랬다면서 왜이래?"

"그건.. 그건... 홧김에 그런건데..."

"진짜 형 그거 고칠 필요가 있어."

"..."

"또 별거아닌걸로 말싸움하다가 헤어지자했겠지. 그걸 또 재범이형은 화나서 그러자고 했겠고. 내 말 맞지?"


아니라고는 말 못하는듯 입을 꾹 다물고 오뎅탕을 뒤적거리는 영재를 한번 보고 한숨을 쉰 유겸은 오뎅을 푹 찍어 영재의 입안에 쑤셔넣었다. 어휴, 답답해.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야 영재형 많이 취했어?"


와씨, 구원자왔다. 유겸이 뱀뱀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영재도 뱀뱀을 보고 활짝 웃었다. 우리 뱀이 왔엉?


"우리 뱀이는 무슨 얼어죽을. 형, 얘 왔으니까 나 간다. 내일은 재범이형한테 제발 다시 사겨달라 말하고. 뱀아 너도 수고해라, 화이팅."

"야, 계산하고 가."

"나보다 돈많은 놈이 뭔소리야, 명색이 뱀뱀인데 이 정도는 좀 쓰자. 그럼 빠이."


유겸이 겉옷을 빠르게 입고 포장마차 문을 열고 나갔다. 영재는 멍하게 그 모습을 보다 베시시 웃었다. 머리가 몽롱한게 아주 기분이 좋아. 임재범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더 행복하게 술 마시는건데. 영재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형 무슨 연기 연습해? 웃었다가 슬펐다가 난리야."

"야 뱀아, 임재범이랑 나랑 진짜 헤어진거야?"

"그건 형이 더 잘 알지. 재범이형은 지금까지 연락 없어?"

"응... 진짜 미친거아니야? 내가 한두번 헤어지자했어? 이쯤되면 연락와야 정상인데."


뱀뱀은 영재가 들고있는 소주병을 빼앗아 술을 따라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보니 재범이형도 이번엔 마음먹었나보네. 최영재한테 화도 못내는 사람이.

한참을 재범의 욕을 하다 벌떡 일어난 영재는 뱀뱀의 팔을 잡아당겼다. 뱀아 너네집가서 2차하자.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형 집 가자는줄 알았네. 알았어, 가자."


거의 안다시피 어깨동무를 한 뱀뱀이 영재를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끊임없이 옆에서 쫑알대는 최영재가 귀여워서 결국 뱀뱀은 웃음이 터졌다.


"나 진짜 임재범이랑 끝이야? 어? 뱀아 말해봐."

"어 끝이야. 재범이형 연락도 없는데 뭘 어떡해? 그냥 나랑 연애해. 잘해줄게."

"야, 애써 나 위로해주려고 그러지마. 나 사실 별로 안슬프거든? 그냥 좀 어이가 없어서 그래."


뱀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영재가 취했을때만 슬쩍 고백해보는 제 자신이 더 어이가 없었다.


"임재범... 보고싶어. 어떡하지?"


어뜩케? 다 뭉게진 발음으로 뱀뱀의 무릎에 머리를 갖다대는 영재를 보고 뱀뱀이 머리를 쓸어주었다. 테이블 위의 안주들은 거의 그대로였고 빈 소주병만 몇 병 나뒹굴고 있었다. 언제 다 치운담. 최영재는 또 어떻게 하고.


"그럼 지금 전화해봐."

"어?"

"지금 전화해서 안받으면 진짜 헤어진거야."


형, 이제 확실히 해. 뱀뱀이 지그시 내려다보자 당황한 영재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새벽 4시인데....


"그 형 곡작업 때문에 지금 안잘걸."


눈동자만 굴리던 영재가 휴대폰을 쥐었다.


"전화할거야?"

"아니... 어... 근데 안받아도 헤어진건 아니야!"

"뭐야 그게..."


그냥.. 그냥 안받으면 자는거야! 횡설수설하는 영재를 보던 뱀뱀이 하품을 했다. 알았으니까 빨리 전화나 해.




뚜르르 뚜르르 흔한 컬러링 하나 없이 정직한 연결음소리를 들으며 영재는 입술을 잡아뜯었다. 연결음이 다섯번이 넘어가자 점점 술기운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괜히 지금 전화했나.. 흑역사 탄생의 순간인가..


"...최영재?"

"혀엉.."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목소리에 울컥 눈물부터 나온 영재가 울먹이며 재범을 불렀다.


"설마 너 우냐?"

"아씨, 안 울어. 흑, 보고싶어 형."

"어딘데."

"나 뱀이집.."

"뭐라고?" 


갑작스런 큰소리에 놀란 영재가 코를 들이마셨다. 왜, 왜?


"뱀뱀 바꿔봐."

"응.."

"여보세요? 형 오랜만."

"야, 너가 최영재 끌고갔지. 죽고싶냐?"

"와, 헤어졌으면서 애인인척 쩐다."


뱀뱀이 웃음기섞인 말투로 재범을 놀렸다.


"너 딱 기다려. 최영재 데리러갈거니까 영재한테 준비하고있으라그래."

"문 안열어줄건데?"

"문 부셔지는거 보고싶으면 그렇게 해."


히익. 혀를 내두른 뱀뱀이 통화를 끊고 영재를 쳐다보았다. 입술은 퉁퉁 부은채로 벌게진 두 눈두덩이가 귀여웠다. 참나 이런것도 귀여워보이네.


"미안해, 뱀아 내가 너무 진상부렸지."

"미안하면 임재범이랑 그만 좀 싸워."

"응..."

"...아니면 엄청 크게 싸우던지."

"어?"

"아니야, 재범이형이 형 데리러온대. 옷 입어."


헐! 눈을 동그랗게 뜬 영재가 재빠르게 눈을 꾹꾹 눌렀다. 지금 못생김 최고일텐데, 어떡해!






마중까지 나와준 뱀뱀을 고맙다며 한번 안아주고 차에 탄 영재는 재범의 눈치를 살폈다. 살얼음판이다... 살얼음판... 표정없는 재범때문에 더 무서워진 영재는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았다. 일단 보고싶다고 떼를 썼는데 막상보니까 생각보다 더 화난 것 같아서 영재는 갑자기 너무나 서러워졌다. 눈물이 나오려는걸 티내지 않을려고 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하염없이 보다보니, 곧 재범의 집에 도착했다.


"최영재, 할 말 없어?"

"..."


영재는 쇼파에 앉아 손만 꼼지락댔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도 기억 안나지만 어쨌든 내 잘못은 아닐걸... 입을 꾹 다물고 곧 죽어도 미안하다고 하지않는 영재를 보고 재범은 한숨을 쉬었다.


"이 고집불통아, 또 너 마음대로 헤어지자할거야?"


영재가 눈썹을 축 내렸다. 그건 미안한가봐? 재범이 묻자 영재가 코를 한번 훌쩍였다. 씨... 짜증나.


"잘못했어, 안했어."

"잘못했어... 미안... 앞으로는 안그럴게."

"그래 사과 받아줄게. 근데 방금 너 뱀뱀집에서 나온거때문에 나 또 화났어."


그게 왜 화날 일이야! 영재가 억울해하며 고개를 번쩍 들자 재범이 씩 웃었다. 이제야 얼굴 좀 보이네, 이리 와.

아 임재범 이와중에 잘생겨서 짜증나.. 영재가 발을 살짝 구르며 일어선 뒤, 의자에 앉아서 손을 내미는 재범의 무릎 위에 앉았다. 술이 덜 깼는지 안겨서 얼굴을 목에 파묻는 영재의 등을 쓸어준 재범은 천천히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차가운 손에 허리를 쭉 편 영재가 재범을 바라보았다.


"나... 졸린데."

"너 오늘 못자는데? 나 화난거 달래줘야지."


우는 소리를 하는 영재의 목에 입을 맞춘 재범은 영재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지잉 지잉 울리는 진동음에 잠에서 깬 영재가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윽, 나한테 술냄새나...


"여보세요.."

"형! 재범이형이랑 다시 만난다며? 뱀뱀이 그러던데."

"응.. 어제 재범이형이,"

"유겸아, 우리 둘은 몸으로 화해 엄청 했으니까 방해하지말고 전화 끊자. 최영재 밥 먹여야 돼."


아, 완전 티엠아이... 유겸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재범은 전화를 끊었다. 영재가 그 모습을 멍하니보다 눈을 접어 웃었다.


"뭐 좋아서 웃냐? 빨리 와서 밥먹어."

"오 임재범 요리 좀 하는데? 역시 해장엔 콩나물국이지."

"너 때문에 배운거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

"감사합니다. 재범이형, 사랑합니다."


하트를 남발하는 영재를 보며 웃음이 터진 재범은 영재의 앞에 앉아 국을 떠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 기회에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헤어지자고 하는 영재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 한건데, 오히려 3일내내 밤잠을 설친건 자신이라서 앞으로는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재한테는 어쩔 수 없이 져줘야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