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는 여름 맛이었다.





🦊(성인글까진 아니고) 수위 살짝
🦊18년도 글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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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민현입니다. 서울에서 전학왔어요."




잠깐의 정적이 돌았다. 민현은 그런 아이들을 둘러보다 눈을 접으며 웃었다. 와.. 뭐고 점마. 억수 잘생깄네. 근데 3학년에 와 이런 깡촌에 지금 온기고.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커질때쯤 교실 뒤쪽에서 쾅 소리가 났다.




"야, 잠 좀 자자."




인상을 잔뜩 쓴 성운이 책상을 내리치면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자, 그걸 바라보고 있던 민현과 눈이 마주쳤다. 성운은 잠시 멈춰있다가 스르르 다시 엎드렸다. 시바.. 쟨 또 누구야.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은 쉬는시간 종이 치자마자 민현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야, 니 디게 잘생깄네. 서울아들은 전부 니처럼 생깄나. 민현은 빙긋 웃었다.




"고마워. 근데 쟤는 매일 저렇게 누워있어?"

"아.. 쟤? 하성운이라고 하는데, 근데 점마랑 친해지려고 하지마라 별명이 쌈닭이다 쌈닭. 뭔지 아나? 맨날천날 시비걸고 싸우고 다닌다고. 학교에선 저래 맨날 처잔다."




니도 조심해라, 괜히 걸리면 피곤하다이가. 한 아이가 비밀을 알려주듯 가까이 붙어 소근거렸다. 민현이 얼굴을 뒤로 빼며 웃었다. 그렇구나, 근데 곧 수업시작할거같은데? 어, 어, 그래 나중에 밥 같이 묵자! 민현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곤 자신의 대각선 뒤에 누워있는 까만 머리통을 잠깐 쳐다보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성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교실을 나갔다. 다 풀어헤친 하복은 본래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민현이 그걸 잠깐 보다가 아이들과 도시락을 열었다. 여기선 도시락을 먹는구나. 민현은 제 도시락에 얹어주는 갖가지 반찬들을 보며 생각했다.

축구하러가자는 아이들에게 몸이 약하다고 거짓말을 하곤 민현은 학교를 구경하러 갔다. 둘러본다고 해봤자, 학년마다 반이 겨우 2개씩밖에 없었다. 계단을 하나, 둘 올라가서 4층에 도착한 민현은 낡은 소리를 내는 옥상문을 열었다.

낡았지만 꽤 넓은 노란 평상에 성운이 대자로 누워있었다. 민현은 조용하게 다가갔다. 성운이 눈을 감고 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여기 올라오지마, 내 구역이야. 민현이 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성운이 듣기엔 그저 재수없는 웃음이었다.




"싸움 잘한다며?"

"알면 말 걸지마."

"밥 안먹었지?"

"알 필요 없잖아. 너가 뭔 상관인데."

"사투리 안쓰네?"

"닥쳐."

"욕도 잘하구."

"꺼져."




입꼬리를 올려 웃는 민현의 얼굴에 성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성운은 툭툭 시비를 거는 말에 열 받았지만, 허허실실 웃는 그 얼굴을 한번 바라보곤 그냥 포기했다.



왜이러냐, 나.







#








다음 날부터 민현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말리는 아이들은 그냥 무시했다.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 중요한건 걔네가 아니었으니까.




"하성운. 같이 밥먹자."

"진짜 궁금한데, 너 말귀 못 알아들어?"

"빨리 와서 밥먹으라니까?"




야, 내가 꺼지라는 말 몇 번 했냐? 왜 자꾸 오고 지랄이야. 성운이 평상에 누워있다 벌떡 일어났다. 성운은 제 말은 들은척도 안하고 나뒹구는 책상 2개를 가져와 도시락을 여는 민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성운아 빨리 와. 나 오늘 햄 싸왔는데 너 햄 좋아해?"




저 미친놈... 마음대로 해라. 성운은 도로 자리에 누웠다. 여름이 다가오는지 햇살이 따가웠다. 내일부턴 여기 안와야지. 민현의 도시락통 소리를 들으며 성운은 눈을 감았다.




"근데 왜 나한테는 시비 안 걸어?"

"너 같은 서울애들이랑은 얘기 안 해."

"서울에서는 애들이랑 잘만 얘기했잖아."




성운이 눈을 번쩍 뜨고 민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현은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뭐?"

"서울에 있던 니 친구들은 다 서울애들아닌가?"




아님 말구. 민현이 또 웃었다. 성운은 그런 민현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나 알아?"

"니가 정학먹었던 학교에서 내가 전학 왔으니까.. 뭐 대충은?"




민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시발, 다 알면서 모른 척 한거네. 성운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 때리고 학교 안나오는 기분은 어땠어?"

"내 잘못아냐."

"그럼 누구 잘못이야, 너한테 맞은 놈?"

"시비 걸꺼면 꺼져."

"내가 너 비밀 지켜줘?"




성운이 민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야, 나 강전온거 여기 사람들 다 아는데 누구한테 뭔 비밀을 말하게? 민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너네 할아버지한테, 니가 게이라는거? 성운이 웃던 입꼬리를 어색하게 굳혔다. 아 미친, 잘못걸렸다.

서서히 다가오던 민현이 평상 위로 올라와 누워있는 성운의 얼굴을 두 팔로 가뒀다. 가까이서보니 애들이 말한대로 정말 욕 나올 정도로 잘생겨서, 그래서 성운은 입을 맞춰오는 민현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서울에서 크게 데이고 일부러 여기 온건데 이래도 되나? 성운의 생각은 민현이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는 순간 아득해졌다. 몰라 시바, 될대로 돼라. 어차피 하나뿐인 인생 즐기다 가야지.

한바탕 민현과 뒹굴고나니 벌써 해가 지고있었다. 드러누운 둘 사이에 콘돔 2개가 힘없이 널부러져있었다. 오랜만의 허리통증에 성운이 인상을 썼다. 그 와중에 이 새끼는 콘돔을 왜 들고다녀. 성운이 부드럽게 높은 선을 그리는 민현의 콧대를 쳐다보았다. 다시 봐도, 잘생겨서 재수없었다.

그나저나, 나야 아무도 안찾는다지만 얘는 왜 이러고있지. 성운이 멀리 던져놓았던 교복바지를 대충 다리로 끌어오면서 생각했다.




"야, 너 전학 온지 얼마안돼서 이러면 대독한테 찍혀."

"대독이 누군데?"

"우리반 담임. 대머리 독수리잖아."




민현이 하하 소리내며 웃어제꼈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고개까지 꺾어가며 넘어가는 민현의 웃음소리가 웃겨 성운도 깔깔 웃었다. 야 그렇게 웃지마아! 미쳤어?




"찍히면, 어떻게 되는데?"

"뭐, 심부름 엄청 하겠지. 아니면 저 밑에 운동장 풀뜯기. 이런거?"

"상관없어. 수업들을 시간에 너랑 한 번 더 자는게 더 좋아."


가만히 듣고 있던 성운의 귀가 빨개졌다. 아 뭐래! 미친놈아!




"나 미친놈아니고 황민현이야. 너 서울에서 남자랑 엄청 놀던 거 그거 너네 할아버지가 아셔?"


"참나, 또 협박하네? 야, 그래 그냥 말해. 난 진짜 하나도 안 무섭, 안 무섭거든?"




성운은 찌질이같이 말을 더듬은 자신을 자책했다. 앞으로 미친놈이라고는 안불러야지. 민현은 그새 성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성운은 또 귀 끝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하늘로 눈을 돌렸다.




"하성운."

"뭐."

"나랑 사귈래?"

"선섹스 후고백하는 그런 예의없는 짓 누가 알려줬어."

"너한테 배웠지."




누구에게 알려준 적은 절대 없다. 그냥 제가 그렇게 행동하고 고백 받은 적은 많았지만. 성운이 괜히 찔려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구멍에 다리를 쑤셔넣었다. 야, 집 갈 시간이야.

민현은 고분고분 성운을 따라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조용해진 민현이 이상해 성운이 슬쩍 얼굴을 쳐다보았다.




"야, 너 왜그래? 내가 고백 안받아줘서?"




민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뭔가 신기해서. 버스정류장에 멈춰선 성운이 뭐가 신기하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골똘히 생각에 빠진 얼굴이 흙모래가 쌓인 신발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성운은 그런 민현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지나갔으므로 둘은 버스가 올 때까지 꽤나 오랜시간 그 자세를 유지했다. 성운은 민현을 보다, 갑자기 과거 서울에서의 제 고등학교 생활을 떠올렸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망나니 그 자체였다. 그냥 아무나 만났고 아무나 몸을 섞었고 아무나 시비를 걸어 주먹을 날렸다. 그 아무나 중 몇몇이 하필 같은 학교 학생이여서 식겁하고 내쫓기듯 할아버지네집 근처로 전학 와버렸지만. 내가 게이라는거 나랑 잔 놈들만 알텐데. 설마 그 중에 황민현이 있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는 얼굴이라, 성운은 아니겠지 하고 넘겨짚었다.

이제서야 저 멀리 탈탈거리며 오는 연두색 버스를 보고 성운이 민현을 툭툭 건드렸다. 야, 뭔 생각을 그렇게 오래해. 생각 너무 많이 하면 머리빠져. 성운이 대충 나오는대로 말을 뱉고 버스에 탔다. 민현은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야, 너 안타? 다급히 외치는 성운을 무시하듯 버스는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쟤 뭐야! 버스 안타는데 왜 앉아있었어! 성운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쟤 속을 모르겠네. 성운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삐그덕대는 허리 주변이 욱신거렸다.








#








황민현은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성운이 그렇게 무시하고 짜증을 내도 꿈쩍않고 들이댔고, 반대로 아이들이 민현에게 그렇게 들이대도 무시로 일관했다. 아이들은 그럼에도 민현에게 말을 줄곧 걸었다. 하긴, 나도 여기 토박이였음 민현을 한번 꼬셔보려 했었겠지. 시내에 나가려면 차로 1시간은 달려야 하는 이런 깡촌에서 애초에 재미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일부러 찾아낼 필요도 없이 가장 재밌는건 새로 전학 온 황민현이었으니까. 그래도 민현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애들을 보고있자니 뭔가 마음에 안들었다. 참나, 쟤가 뭐라고.




"성운아, 집 같이 가자."

"어?"




성운이 황당하다는 듯 민현을 바라보았다. 반듯한 교복과 단단히 맨 가방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뭔 사이라고 집을 같이 가냐?




"그거 한 사이잖아 우리."

"닥쳐 미친놈아."

"아, 성운이가 언제쯤 내 이름으로 불러줄까. 내가 입열면 너 끝인데. 그때쯤 불러줄거야?"




황민현은 또 눈을 접어서 웃었다. 아마 그 웃음에 속지 않는건 나 뿐일거다. 성운이 결국 의자에서 일어나 앞장을 섰다. 그러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만 똑바로 보면서 걸었다.




"성운아, 우리 사귀자니까?"

"나 이제 남자랑 안사겨."

"그럼 어제는 왜 나랑 했는데."




아 그건 니가 달려들어서! 성운이 뒤돌아서 발끈하려다 멈췄다. 민현이 코 닿을 거리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꺼, 꺼져! 괜히 볼이 달아오르는거 같아 민현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넌 이런식으로 막 협박하고, 막, 사람 함부로 다루고 그래?"




민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거 좋아하는거 아니었어?"




성운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털썩 앉아 민현을 째려보았다. 진짜 미친놈이네, 솔직히 말 해봐, 너도 강전당해서 여기로 왔지? 그래, 너 때문에 온거니까 뭐, 강제 전학맞지. 성운이 이해가 가지않는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 때문에 전학을 왜 왔는데? 너 찾으러 여기 온거라고, 니가 좋으니까. 민현의 폭탄발언에 성운이 어버버댔다.




"말도 안되는 말로 플러팅 할 생각 하지마. 그래도 너랑은 안사겨."

"그럼 내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지 성운아. 섭섭하게 그러지 말고, 한 번 생각해봐. 내가 협박에는 소질이 없거든."




민현의 말이 풀숲에서 찌르르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와 섞였다. 성운이 자신만 완전하게 담긴 민현의 눈동자를 보았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한 여름의 정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목 뒤가 뜨끈뜨끈 했다.


아, 방금 그 눈빛. 꽤 크리티컬이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민현의 방 안이었다. 아이씨! 그 놈의 눈! 그 놈의 눈빛! 성운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이었다. 걸어서 5분은 가야했지만, 5분정도야 듬성듬성 집이 있는 시골에선 먼 거리도 아니었다. 다만 이미 눈에 스파크가 터진 둘에게는 5시간 같았지만.

민현이 물을 가져왔다. 지금이라도 잘 있으라하고 나갈까? 성운이 받은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며 민현을 올려다보았다.




"성운아,"

"어, 어?"

"왜 따라왔어?"




이 새끼가 진짜 장난하나, 하마터면 성운은 민현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지가 꼬셔서 데리고 온거면서 왜 왔냐고 물어보는 꼴이 재수가 없었다. 내가 유혹에 약한 거 알고 이용한게 틀림없어. 괜히 이유모를 반발심이 들었다.




"너한테 한 번 놀아나볼려고 그런다 이자식아. 오랜만에 실력발휘해줘?"




성운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민현의 교복카라를 끌어당겨 입술을 맞췄다. 숨이 모자를 때까지 민현의 혀를 끌어당겼다. 더 해줘, 만져줘. 애타는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터져나왔다. 민현이 성운의 허리를 잡아당겨 밀착한 뒤, 교복 위로 성운의 엉덩이를 꾹 움켜쥐었다. 으응, 성운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하성운이 이렇게 적극적이니까, 내가 좀 부끄러운데."




부끄럽긴 지랄. 성운이 코웃음을 치며 민현의 아래로 내려갔다. 황민현, 나랑 놀려면 정신 차리고 제대로 놀아줘야돼, 알았지.









"...사실 나 섹스 처음이야."

"뭐?"

"아니 너랑 저번에 한 것도 치면 두번째. 그니까 너가 나 책임져야돼."

"난 책임지라는 말 제일 싫어해. 그리고 니가 신나게 박아놓고 무슨 책임을 따지고 있어. 원래 처음이 어렵지, 두번이 어렵냐?"

"근데 너는 처음부터 쉬웠지?"




또 시비거네, 서로 잘 즐겼으면 된거지. 여운때문에 색색 숨을 내쉬던 성운이 민현의 푹신한 침대에 드러누웠다. 지난번 딱딱한 평상에서의 섹스에 비하면 굉장한 만족감이었다. 소리도 제대로 못내서 답답했었는데. 후우 성운이 숨을 내쉬고 민현의 얼굴을 끌어당겨 쪽소리가 나게 입을 붙였다 뗐다. 아직 식지않은 몸이 뜨거웠다.




"너 진짜 나 때문에 전학왔어?"

"그렇다고 하면, 사겨줄거야?"

"무슨 급한일 있어? 말만 하면 사겨달래."




민현이 성운의 까만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너한테만 급해, 갑자기 또 도망갈까봐. 굳이 말로 꺼내진않았다. 그냥 조잘대는 성운의 오동통한 입술을 보았다. 아, 한번 더 하고싶다.




"암튼, 나는 거기 있었던 일 다 털고 여기 온거거든. 앞으로는 진짜 깨끗하게 살거야. 그니까 너 하는거 보고 마음 바꿀지 말지 결정할래."




진짜로? 환하게 웃는 민현을 보고 성운이 픽 웃음이 터졌다.




"좋냐?"

"근데 성운아, 그럼 나도 너 하는거 보고 너네 할아버지한테 말할지 말지 결정해도 돼?"




미친, 진짜. 결국 성운은 민현의 가슴팍을 퍽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하지 마라. 좋은말 할 때."




그 말을 들은 민현이 배를 잡고 웃었다. 넌 왜 내가 뭔 말만 하면 웃어어! 민현의 배 위로 널부러진 옷을 집어던졌다.




"야, 옷이나 입어, 그리고 너 왜이렇게 말랐어? 밥 좀 많이 먹어라."

"니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조용히 해. 나 이제 간다."




민현이 천천히 걸어가는 성운의 뒷통수를 보았다. 어디선가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주황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








그 둘이 치열하게 사귀네, 마네 씨름하는 동안 어쨌든 시간은 흘렀다. 초여름이 지나가고 더운 바람이 훅 불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하나, 둘 눈치를 보며 수능 준비에 들어갔다. 성운도 할아버지의 등쌀에 못이겨 꾸역꾸역 책상에 앉았다. 2학년 때 전학오는 바람에 유일한 길인 농어촌 전형도 못쓴다며 할아버지가 닦달을 했지만 성운은 관심도 없었다. 아! 그냥 할아부지 밑에서 농사하면서 살거라구여! 들은체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뒤에서 성운은 매일 소리쳤다.




"황민현, 너 방학때 뭐할거야."

"하성운이랑 놀기."

"공부는 안해?"

"너랑 노는게 더 중요한 일이야."

"그러다 대학 못간다."

"아, 성운아, 우리집 갈래? 집에 수박 있는데."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성운은 이쯤되니 이미 자신은 민현에게 넘어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현과 그 이후로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틈만 나면 몸을 섞었고, 행위가 끝나자마자 민현은 어김없이 사랑을 고백했다. 성운은 그 고백에 대답은 안하면서도 민현이 팔을 벌리면 그 안에 들어가서 색색 숨을 골랐다. 어쨌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싫지않았다.

부모님이 거의 매달 출장을 가셔서 민현의 집은 항상 비워져있다고 했다. 당연히 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파라다이스이자 유토피아였다. 오늘도 자연스레 민현의 방으로 들어온 성운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우리집도 침대 있었음 좋겠다아. 그 말에 민현이 수박을 들고오며 웃었다. 나도 그랬음 좋겠다, 너 방에 침대 있으면 거기서도 그거 할 수 있잖아. 성운이 깔깔웃으며 민현의 어깨를 툭 쳤다.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우리 할아부지한테 들키면 기절하실수도 있어.




"수박 어제 먹었는데 맛있더라. 먹어봐."

"응."




하지만 수박이 성운의 입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민현이 침대로 밀어버려 그 위에 대자로 눕혀졌다. 아니, 먹어보라매! 황당하게 쳐다보는 성운을 보던 민현이 양 팔목을 붙잡으며 웃었다. 너무 야해서, 안되겠어.

아쉬운대로 수박을 집었던 제 손가락을 쪽쪽 빨던 성운이 민현이 내미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았다. 후, 대신 빨리 해. 나 수박 좋아하거든.









"수박 맛있지?"

"응, 근데 너 이제 좀 잘한다. 처음엔 진짜 못했었는데."

"진짜? 너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엎드려서 수박을 먹는 성운의 척추뼈를 민현이 손가락으로 하나씩 눌렀다. 아, 뭐해, 간지러 멍청아. 뼈를 따라가다 하얗고 통통한 엉덩이 사이로 손을 가져다댔다. 아흑, 민현아.. 성운이 고개를 묻으며 신음을 뱉었다. 섹스할 때만 다정하게 불러주는 제 이름이 낯설었다. 너는 대체 왜 이렇게, 왜 이렇게.




"아 하성운, 진짜 미치겠다."

"왜에. 한 번 더 할까?"

"내가 거절할 거 같아?"

"안 할 거 아니까 물어보는거지."




배시시 웃는 성운의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맞췄다. 혀 끝에서 달달한 수박맛이 났다.



그 달달함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하성운이 좋았다. 성운의 손에 들린 수박의 즙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민현은 아랑곳않고 입술을 계속 물었다.





참을 수 없는,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는 여름 맛이었다.










"...성운아,"

"왜?"

"우리 사귈까?"




하아, 하아. 고르지 못한 숨소리를 들으며 민현이 팔을 벌렸다. 성운이 천천히 민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래."




어? 민현이 성운을 내려다보았다. 성운은 꾹 웃음을 참으며 허리에 더 파고들었다.




"그래. 우리 사귀자고, 민현아."









민현은 그 날의, 그 여름의 하성운을 눈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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