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짼운] 밴드부
  • 2021. 9. 27. 21:25
  • 내가 밴드부 왜 계속 했는지 알아?





    으레 그렇듯 학교 안에서는 근거없는 소문이 굉장히 빨리 퍼지기 마련이다. 1학년 김재환이라고, 그 기타 잘치는애 있잖아. 걔, 게이래. 호들갑을 떠는 친구의 말에도 성운은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했다. 애새끼들도 아니고, 무슨 그런 소문을 내고 앉았냐.


    "하성운, 오늘 뭐해."

    "축제연습."


    미친, 고3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직도 동아리하냐?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놀자, 어? 팔을 잡아당기는 성진을 손으로 밀어내고 성운은 곧장 밴드부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더운 바람으로 인해 끈적하게 달라붙는 하복의 느낌이 싫어,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려있을 동아리 문을 활짝 열어제낀 성운은 그대로 멈췄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재환의 인사에 어색하게 대답한 성운이 천천히 문을 닫고 가방을 구석에 놓았다. 재환은 기타만 퉁퉁 튕기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왜 너 혼자있어?"

    "오늘 애들이 다 늦는대요."


    그래? 성운은 마이크를 톡톡 건드렸다. 괜히 3학년이나 돼서 이번 축제에 참가한다고 했나보다. 성운은 재환의 기타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동아리를 그만둬버린 3학년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김재환이랑은 무대에 한번 같이 서보고싶었으니까. 성운은 힐끔 재환을 쳐다보았다.


    "선배."

    "어?"

    "저희 듀엣곡 먼저 연습하고 있을까요."

    "아, 어, 그러자."


    재환은 저에게 무뚝뚝한 편이었다. 다른 애들이랑 있을땐 곧잘 웃더니 저와 있을땐 재미가 없나보다. 성운은 서운했지만 까딱하다 더 어색해질까봐 티를 내지는 못했다. 사실, 자신도 재환만 보면 왠지 긴장이 되어 말수가 줄어들었으니까 서운해 할 입장도 못되었다.

    부드러운 기타소리가 동아리방을 울렸다. 취중진담. 재환이 먼저 성운에게 듀엣으로 하자고 들려주었던 노래였다. 그래, 유명하기도 하고, 가사도... 좋고. 성운은 왠지 뒷목이 뜨끈한 느낌에 어깨를 한 번 털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재환이 기타를 치며 부르기 시작할땐 성운은 항상 눈이 마주치지않도록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연습때마다 이러니, 성운도 미칠 노릇이었다. 진짜 미친놈이냐, 하성운. 나한테 하는말 아니니까 정신차리자.


    "선배, 화음 넣을땐 눈 좀 마주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 그래, 미안. 그 1절 싸비부터 다시하자."

    "네."


    성운은 헛기침을 작게 하고 고개를 들었다. 정통으로 마주친 눈에 성운이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고음부분을 부르느라 찡그린 미간이 눈에 띄어 성운은 재환의 미간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닫힌 창문너머로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들렸다.









    "오늘 연습 끝!"


    "...단체곡 연습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선배랑 취중진담은 몇 번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올곧게 쳐다보며 말하는 재환에게 차마 집에 가고싶다는 말을 못한 성운은 동아리 아이들을 보내며 속으로 머리를 뜯었다. 아씨, 둘만 있으면 또 어색하단말이야.


    "어때요?"

    "...뭐가?"

    "이 노래요."

    "아, 이거? 좋지, 유명한 곡이잖아."

    "제가 부르니까 어때요?"

    "좋...지? 너 이 노래랑 잘 어울려, 목소리도 좋구."

    "...형이라고 불러도돼요?"

    "갑자기? 그래, 불러."


    재환은 그 이후로 성운에게 좀 더 친근하게 굴기시작했다. 계단에서 만나면 여전히 말은 없었어도 인사를 꾸벅하고는 지나갔고 심지어 어제는 먼저 문자로 기타줄을 사러가자고 말하기도했다. 성운은 진심으로 당황했지만 묘한 기분이 들어 재환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갑자기 왜 나한테 같이 가자고했어?"

    "형이 잘 고를것 같아서요."

    "아.."

    "왜요, 다른 이유였으면 좋겠어요?"


    김재환은 이렇게 가끔씩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게했다. 가까이 붙어오는 팔뚝에 화들짝 놀라 떨어지자 재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 놀라요."

    "어... 그냥, 더우니까 그렇지."

    "여기 에어컨 때문에 추울 지경인데."


    아씨! 됐고 기타줄인지 뭔지 빨리 고르기나 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 마음대로 골라! 성운은 옹기종기 상가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기타들이 즐비한 한 가게 안으로 재환의 등을 떠밀었다.

    재환이 기타줄을 고르는 동안 성운은 기타들을 구경했다. 하늘색, 핑크색, 민트색... 참 다양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옆을 돌자마자 보이는 재환의 얼굴에 성운은 깜짝 놀랐다.


    "뭘 자꾸 그렇게 놀라요, 사람 민망하게?"

    "불쑥 들이미니까 그렇지."

    "다 샀으니까 가요."

    "...이제 집 가는거야?"


    왜요, 아쉬워요? 대뜸 묻는 재환에게 성운은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로? 눈을 동그랗게 뜬 재환이 성운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


    "그럼 뭐 할까요?"

    "너네집 가도 돼?"

    "우리집이요?"

    "아니야, 그냥 한 번 말해봤어."

    "아니에요, 가요. 집에 아무도 없을거예요."


    그런 정보는 일부러 알려주는건가? 성운은 궁금했지만 꾹 참고 재환을 따라갔다. 여전히 붙잡힌 손목이 뜨거웠다.






    "형, 저 화장실 좀 갔다올게요."

    "어, 구경하고 있을게."


    어정쩡하게 일어나 방을 나가는 재환을 본 성운이 재환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기타도 만져보고 피아노도 띵띵 눌러보던 성운은 카톡 소리에 재환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미리보기에 뜬 메세지를 읽은 성운은 얼굴을 굳히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야 하성운은 니 게이인거 아냐? 더러운 새끼]


    화장실에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한 재환이 사색이 되어 성운을 바라보았다.


    "...봤어요?"

    "뭘? 야 배고프다. 라면먹자."


    "...네."


    라면을 다 먹고, 제가 하겠다고 박박 우겨서 설거지까지 마친 성운이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어우, 먹었더니 졸리다.


    "좀 자요."

    "안돼, 나 집가서 노래 연습해야돼."

    "그럼 여기서 해요."


    어차피 듀엣도 더 연습해야하니까...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성운이 재환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 가지마?"

    "아니에요, 형 가고싶음 가도 돼요."

    "야, 그렇게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가냐? 빨리 기타나 가져와."


    아, 아까 산 기타줄 바꿔봐. 성운이 바닥에 철푸덕 앉자 재환이 웃음을 꾹 참고 기타를 가져왔다. 기타를 연주하는 재환의 손을 보며 성운이 감탄을 했다.


    "진짜 잘친다."

    "당연하죠."

    "그렇다고 바로 인정을 해버리냐."


    형은 노래 잘부르잖아요. 당연하지. 재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연습할까요? 응. 고개를 끄덕인 성운은 기타반주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재환은 그런 성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네, 지금까지 밴드부의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박수소리를 들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재환은 활짝 웃었다. 성운은 그런 재환의 웃음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좀.. 간질거리는 기분. 쟤 저렇게 웃는거 처음 봐.

    수고했다며 밴드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 성운은 웅웅거리는 강당을 빠져나와 매점 구석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형, 수고했어요."

    "어, 김재환, 너도 수고많았어."

    "저도 밀키스."

    "맡겨놨냐?"


    성운은 밀키스를 꺼내 재환에게 건네고 다시 하나를 뽑았다.


    "여기 조용하고 좋다. 좀 쉬다가자."

    "네."


    캔을 따서 마시던 성운은 재환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공연 때문인지 뭔지 계속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아까 실수해서 그런가, 왜 이러지.


    "아, 나 삑사리 난거, 자꾸 생각나."

    "아니에요. 잘했어요. 형 없었으면 저 긴장해서 노래도 못부르고 내려왔을걸요."


    성운은 고개를 들어 재환과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재환은 웃고있었고, 성운은 이번 축제에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공연, 형이랑 해서 좋았어요."

    "나도, 너랑 해서 좋았어."


    이제 가요. 왠지 발갛게 올라온듯한 재환의 뺨을 성운이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났다. 유일하게 동아리방은 교무실 중앙제어가 아니여서 펑펑 틀어제꼈는데, 얼마 전부터 털털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에는 히터마냥 뜨거운 바람이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동아리 후배들은 성운보고 어떻게 해보라 눈치를 보냈지만 성운도 어찌할 바를 못해 대충 연습을 하고 빨리 보낼 뿐이었다.


    "에어컨은 학교에다 내가 말해볼게. 얼른 가, 다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김재환 왜 안가?"


    재환은 멀뚱히 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요새 재환이 조금 이상했다. 축제가 끝난 이후로, 동아리 시간만 채우고는 인사는 커녕 곧장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특히나 저와 마주치면 일부러 눈을 피해버리는게,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야, 너 요새 이상하다? 나 피해다니고, 연습도 더 하자고 안하고."



    "형 동아리 그만둬요?"



    "어? 어. 어떻게 알았어. 이번주까지만 하고 이제 수능 준비해야지. 아니 근데, 너 왜 자꾸 나 피하냐니까?"

    "형도 알거 아니에요."

    "뭘?"

    "저 게이라고 소문난 거."

    "그래서?"

    "형이... 오해받을까봐."

    "그런거 신경쓰지마, 인생 피곤해."


    그거때문에 그런거야? 성운은 재환의 머리를 꾹 눌렀다. 까슬거리는 머리카락의 촉감이 손에 닿자 성운은 손을 천천히 뗐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 나 뭐 실수했나?


    "...근데 그 소문, 진짜면 어떡할래요?"


    성운은 한발짝 다가오는 재환에게 맞춰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진짜면 진짜인거지, 뭐... 성운은 애써 웃었다. 심장소리가 제 귀 옆에서 뛰는것처럼 쿵쾅쿵쾅 난리가 났다.


    "...그럼 형이 좋다고 하면요?"

    "어, 어?"


    잠시만, 생각정리 좀 하자. 당황한 성운이 로봇이 된 듯 삐걱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재환의 눈을 피했다. 재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형도, 제가 더러워요?"


    성운은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숙이는 재환을 급하게 껴안았다. 창문 밖에서 더운 바람이 훅훅 불었음에도 성운은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김재환이 울고있었다.


    "...나 싫어하지마요."

    "야, 야. 내가 널 왜 싫어하냐?...나도 너 좋아해."


    네? 울먹이며 되묻는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났다. 성운은 웃음을 꾹 눌러참았다. 이렇게 쫄보자식이 커밍아웃은 어떻게 했나몰라.


    "내가 밴드부 왜 계속 했는지 알아?"

    "...아니요."

    "너가 나랑 무대 하자고 했으니까. 너 한번이라도 더 볼려고."


    말없이 느릿하게 고개를 드는 재환을 느끼곤, 성운은 껴안았던 팔에 힘을 풀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재환이 성운의 팔을 다시 잡아당겨 입을 맞춘건 순식간이었다. 성운은 놀라지않고 재환의 목에 팔을 감았다. 급하게 얽히는 혀가 뜨거웠다. 점점 뒤로 밀려 성운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으응, 응, 숨 쉴 틈을 찾아 몰아쉬자마자 다시 질척하게 감겨오는 혀의 감촉에 성운은 목에 소름이 돋을만큼 부끄러워졌다. 눈을 못뜨겠어. 성운이 다시는 뜨지 않을 것처럼 눈을 꽉 감자, 재환은 그런 성운의 허리를 손으로 잡아당겨 아래를 바짝 붙여왔다. 아, 미치겠네.

    이미 활짝 열려있는 하복사이로 손이 천천히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반팔을 걷어내고 성운의 판판한 배에 재환의 손가락이 닿았을때 성운은 눈을 번쩍 떴다.


    "아, 재환아."

    "...죄송해요."

    "아니, 해도 상관은 없는데 너무 덥지않아?"

    "네?"

    "우리집 갈래? 집에 아무도 없는데."


    ...네. 짧고 쑥쓰러운 대답에 성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그렇게 웃지 좀 마요. 왜. 진짜 몰라서 물어요? 왜에. 아 됐어요. 기타를 번쩍 매고 척척 걸어나서는 재환의 달아오른 귀를 보며 성운은 또 다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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